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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이어의 정서주의와 그 한계
    단편/인문학 2022. 7. 11. 08:26

    제가 예전에 다른 용도로 썼던 글을 적당히 줄여서 올립니다.


    1. 서론

       철학의 분과학문 중 하나인 윤리학은 메타 윤리학, 규범 윤리학, 응용 윤리학으로 나뉜다. 이중 도덕적 판단이 지니는 의미를 연구하는 메타 윤리학은 크게 인지주의와 비인지주의로 구분할 수 있다. 인지주의는 윤리적 진술이 여타 진술과 마찬가지로 모종의 사실을 진술하는 기능을 가지며, 이러한 윤리적 진술로 표현되는 윤리적 판단은 모종의 신념을 표현하기 때문에 참·거짓의 진리치를 갖는다는 견해이다. 반면 비인지주의는 윤리 언어의 주된 기능은 세계를 기술하거나 신념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비인지적 상태를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윤리적 진술 및 판단과 관련하여 참·거짓을 가릴 수 없다는 견해이다.
       인지주의를 정면으로 비판하는 것이 에이어의 정서주의이다. 정서주의는 논리적 실증주의의 검증주의 의미론을 그 근거로 드는데, 검증주의 의미론에 따르면 어떤 진술은 분석적이거나 경험적으로 검증 가능할 때만 의미를 지닌다. 에이어는 이러한 관점에서 윤리적 진술은 참·거짓의 진리치를 갖는 사실적 명제를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감정을 표현하는 것일 뿐이라 주장한다. 하지만, 에이어의 주장은 얼핏 보기에도 기존 견해를 송두리째 비판하는 급진적인 주장이며, 한계를 내포한 것으로 보인다. 본고에서는 에이어의 정서주의에 관한 내용을 살펴보고, 그 이론이 지닌 한계를 두 가지 정도 검토해보고자 한다.

    2. 본론

    1) 에이어의 주장

       에이어는 윤리학에서 다루는 내용을 크게 네 가지로 구분한다. 첫째는 윤리적 용어의 정의를 표현하는 명제 혹은 어떤 정의의 적합성과 가능성에 관한 판단이다. 둘째는 도덕적 경험의 현상과 그 원인을 서술하는 명제이다. 셋째는 도덕적 덕을 행하도록 하는 권고이다. 넷째는 실제 도덕적 판단이다. 에이어는 논리 실증주의의 도구인 검증 가능성의 기준을 통해서 이러한 진술 중 첫 번째 진술만이 유의미한 진술이라고 주장한다. 에이어에 따르면 도덕적 경험의 현상과 원인을 설명하는 것은 철학이 아니라 심리학이나 사회학의 영역에 속하며, 도덕적 덕을 행하도록 권고하는 것은 단순히 듣는 이가 어떠한 행위를 하게 하려는 명령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는 윤리학이 근본적으로 지닌 문제에서 비롯하는데, 논리적 분석의 대상이 되는 유의미한 문장은 술어의 정의로 진위를 밝힐 수 있는 명제거나, 경험적인 관찰을 통해 진위를 밝힐 수 있는 명제여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윤리적 판단의 근간이 되는 윤리적 명제는 이 두 가지에 속하지 않는다.
       따라서 윤리학이 기능하려면 주관주의나 공리주의와 같은 심리주의적 가치론을 따라야 한다. 하지만 에이어는 주관주의에서 말하는 'X가 옳다'는 '어떤 개인(또는 공동체가) X를 승인한다'라는 것에 불과하기에, 이는 심리학적 판단에 지나지 않는다고 반박한다. 또한, 에이어는 공리주의에 대해서 'X가 옳다'라는 진술은 'X가 최대 다수에게 최대 행복을 가져다준다'라는 사회학적 판단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이 둘은 각각 심리학과 사회학의 영역에서 다루어야 하지, 철학에서 다룰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한편 에이어는 비인지주의적인 입장에서 윤리적 진술 및 판단은 사실적 진술과는 다르게 작용한다고 말한다. 에이어는 검증 원리를 윤리적 진술에 적용하여, 윤리적 문장은 감정 표현에 한정된다는 정서주의를 주장한다. 즉 에이어에 따르면 윤리적 진술은 세계에 관한 그 어떤 사실도 기술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1. "너는 돈을 훔쳤다."
    2. "너는 그 돈을 훔쳤다는 점에서 잘못된 행동을 했다."

       에이어에 따르면 두 번째 문장에서 포함된 윤리적 개념은 단순히 돈을 훔친 것에 대하여 화자의 감정을 드러낼 뿐이며, 첫 번째 문장과 두 번째 문장이 지닌 사실적 내용은 다르지 않다. 또한, 예를 들어 '도둑질은 잘못된 행동이다'라고 주장할 때 도둑질과 관련된 내용을 기술하더라도 도둑질이 왜 잘못된 내용인지는 증명되지 않으며 그러한 문장의 진위를 가릴 수는 없다. 에이어는 이를 일반화하여 모든 윤리적 진술이 참·거짓의 진리치를 갖는 사실적 명제를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감정을 표현하는 기능을 갖는다고 주장한다.

    2) 비판점

       에이어의 주장과 관련해서는 크게 두 가지 비판점을 살펴볼 수 있다. 우선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에이어의 주장은 근본적으로 '어떤 진술은 분석적이거나 경험적으로 검증 가능할 때만 의미를 지닌다'라는 검증주의 의미론에서 시작한다. 하지만 이 주장 그 자체는 분석적이지도 않고 경험적으로 검증할 수 없다. 따라서 만약 이 주장이 참이라면 이러한 검증 원리는 무의미하며, 반대로 이러한 검증 원리가 유의미하다면 '어떤 진술은 분석적이거나 경험적으로 검증 가능할 때만 의미를 지닌다'라는 주장이 거짓이 된다. 따라서 이 검증 원리는 어떠한 경우에도 참이 될 수 없다.
       두 번째로 프레게-기치 문제를 들어 비판할 수 있다. 정서주의에서는 문장이 단순한 문장에 사용될 때와 조건문에서 사용될 때는 각각 다른 기능을 하는 것으로밖에 설명할 수 없다. 즉, 전건긍정법과 같이 윤리적 문장이 조건으로서 가정되거나 부정되는 경우에 화자의 감정을 나타내는 것으로 기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아래와 같은 논증은 정서주의에서도 타당한 논증이라고 할 수 있다.

    P1. 만일 돈을 훔치는 것이 도덕적으로 나쁘다면, 다른 사람을 시켜서 돈을 훔치는 것도 도덕적으로 나쁘다.
    P2. 돈을 훔치는 것은 도덕적으로 나쁘다.

       P1에서는 도덕적으로 나쁘다는 것이 주장이 아니라 조건이라는 맥락에서 사용되기 때문에 이는 화자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라 보기에 어렵다. 반면 P2에서는 정서주의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감정적인 요소를 표현하고 있다. 따라서 P1과 P2에서 말하는 '나쁘다'라는 말은 서로 다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정서주의의 논리에 따라서는 이러한 논증은 성립하지 않는 것이 정당하다. 그러나 우리는 일반적으로 이러한 논증이 타당한 것이라 판단한다. 따라서 정서주의는 그 논증이 잘못된 것을 인정하거나, 일반적으로 타당한 것으로 판단되는 논증을 부정해야 할 것이다.

    3. 결론

       살펴본 것과 같이 에이어는 '어떤 진술은 분석적이거나 경험적으로 검증 가능할 때만 의미를 지닌다'라는 검증 원리를 토대로 정서주의를 주장하였다. 에이어의 주장에 따르면 윤리적 진술은 분석적이지도 않고, 경험적으로 검증 불가능하니 참·거짓의 진리치를 가지지 않고 단지 감정을 표현할 뿐이다. 하지만, 이러한 에이어의 주장은 근본적으로 어떠한 경우에도 성립하지 않는 모순을 지닌 검증 원리에서 기인한다. 또한, 에이어의 주장은 프레게-기치 문제에 따르면 윤리적 문장이 조건으로 사용되는 경우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여, 일반적으로 타당해 보이는 논증을 부정하게 되는 자가당착의 문제에 빠진다는 한계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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